
독일 여행 7일차. 베를린에서는 3일차가 되었다. 내일이면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가서 공항으로 향해야 하니, 아마 이번 글이 독일 여행의 마지막 기록이 될 것 같다. 예전에 책에서 ‘여행에도 주말이 필요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인 것 같다. 오늘이 딱 일주일째이고, 요일도 마침 일요일이라 나는 베를린에서 주말 같은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Boxhagener Platz 플리마켓

유럽여행에서 일요일 하면 생각나는 건 나에게는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플리마켓 벼룩시장이다. 여기서는 정말 어디서도 발견하지 못한 진귀한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흔하지 않은 디자인의 옷이 될수도 있고 인테리어 소품 그리고 개인이 핸드메이드로 제작한 작업물까지 정말 다양하다. 그래서 나는 아침 일찍 보물찾기를 하기 위해 Boxhagener Platz로 향했다.


이번 독일 플리마켓에서 나에게 가장 큰 수확이자, 제일 잘 산 물건은 바로 빈티지 카메라였다. 나는 카메라에 욕심이 많은 편이라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 등을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빈티지 캠코더는 없었기에 이번에 꼭 사고 싶었다. 가격도 정말 저렴했고, 상태도 매우 좋았다. 현금이 없어서 잠시 고민했지만, 너무 사고 싶어 ATM으로 달려가 돈을 인출했다.
메모리카드는 한국에 돌아와 구매했고, 작동도 잘되었다. 나중에 동묘에 가서 카메라들을 구경했는데, 여기 가격의 5배는 되는 것 같았다. 그때 잠깐 더 사올 걸 그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플리마켓은 중앙 공원을 중심으로 크게 둘러져 있었다. 공원 한가운데에는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놀이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어린이 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귀여운 장난감과 책들이 놓여 있었고, 어린 친구들이 직접 앉아서 판매를 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배가 고파서 근처 비건 레스토랑 1990 Vegan Living에 들어갔다. 타파스 스타일의 작은 그릇 요리들이었는데, 하나하나 모두 맛있어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2차전으로 플리마켓을 다시 둘러보았다. 작은 그릇과 키티 피규어를 샀고, 치마도 두 벌 골랐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빈티지 카메라가 이번 방문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RAW-Gelände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를 가려고 걸어가던 중, 또 하나의 플리마켓 장소인 Boxhagener Platz를 발견했다. 그래피티로 유명한 장소라 그런지 화려한 벽화가 많았다. 다시 여기서도 플리마켓 구경을 시작했고, 이곳에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액세서리를 파는 곳도 정말 많았는데, 대부분 대장장이처럼 직접 반지를 제작하고 있었다.
Urban Spree

플리마켓의 축복이 끝이 없다. 옆 구역인 Urban Spree 일대에도 플리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그냥 가는 길마다 플리마켓 중이다. 여기서는 빈티지 옷이 많았는데, 마음에 드는 롱치마를 두 개 구매했다. 사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지만, 고민 끝에 절제해서 선택했다. 게다가 두 개를 샀다고 디스카운트까지 해주셔서 더 행복했다.

그리고 구석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있어 가보니, 시크릿팩이라는 자판기가 있었다. 안에는 택배 상자들이 가득했는데, 아마 수취인이 없는 택배 같았다. 돈을 넣고 뽑으면 상자가 나오는데,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는 전혀 모르는 시스템이었다. 누군가 상자를 뽑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안에서 정말 쓸모없는 물건이 나오는 바람에 다 같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진짜 이스트사이드를 향해 걸어가는 길이다. 그리고 기차 선로 끝에서 발견한 낭만 있는 사람. 나도 악기 하나 들고 바람 따라 이동하고 싶다.(악기 연주 못하는 1인)

East Side Gallery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그라피티를 보기 위해 이스트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에 왔다. 오는 길에도 이미 많은 그래피티를 볼 수 있었지만, 이곳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기념하며 118명의 예술가가 참여해 벽 일부를 뒤덮은 프로젝트라고 한다. 그중 유명한 벽화 앞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처음에는 방향을 잘못 잡아 반대쪽으로 갔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꼭 봐야 할 것 같아 다시 돌아왔다.


나는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벽화보다는, 벽 건너편 강변을 따라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햇살 아래 강가에 앉아 쉬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Nante-Eck | Restaurant Berlin Mitte

독일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제대로 된 독일 음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아 레스토랑을 찾아왔다. 미리 예약을 해둔 덕분에 자리로 바로 안내받았다. 내부는 넓고, 메뉴판은 신문지처럼 독특하게 디자인되어 있었으며, QR코드로 음식 사진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슈바이학센을 시켰고, 알코올을 곁들이면 좋을 것 같아 대충 이름이 좋아 보이는 것을 함께 주문했다. 술은 잘 못 마시지만, 몇 모금으로 분위기만 즐겼다.

음식이 나오자 사진에서 보던 것처럼 칼이 꽂혀 있었다. 살은 부드럽게 잘 발렸고, 양이 많았지만 끝까지 남김없이 맛있게 먹었다. 레스토랑의 분위기도 좋았고, 직원분들도 젠틀하고 친절해서 마지막 독일 식사를 만족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지도를 보니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강을 건너 조금 걸어가면 미술관이 하나 있어 가보기로 했다. 마침 오늘 일정에 여유도 남아 있어 미술관을 하나 더 둘러보기로 했다.

나의 장점 중 하나는 길을 잘 찾는다는 것이다. 지도를 보고 위치를 한 번 파악한 뒤 머릿속에 그려 넣고, 그대로 기억해 찾아간다.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보는 게 싫어서 일부러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는 편이다. 멀리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미술관이 맞을 거라 확신하며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는 그라비티가 있어서 사진도 찍어가며 즐겁게 걸어갔다.

그리고 도착한 미술관 입구


그렇게 미술관인 줄 알고 들어간 건물은 사실 미술관이 아니라 교회였다. 미술관은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야 했고, 내가 건물을 보고 착각한 것이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서자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리에 조용히 앉아 나도 그 연주를 함께 감상했다. 수준급의 연주였고, 그 공간의 분위기와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이곳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고, 여행의 마지막에 작은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약 5분 정도의 연주가 끝나자 모두가 찬사의 박수를 보냈다. 만약 내가 길을 잘못 들지 않았다면, 혹은 조금만 더 늦게 도착했더라면 이렇게 아름다운 연주는 듣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이 데려다준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입장할 때 나눠준 연주 순서가 적힌 종이의 뒷장을 보고 한참을 웃었다.


미술관 입구를 찾아 한참을 걸어가는 중이다. 공원이랑 연결되어 있어서 입구 정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Kunstraum Kreuzberg/Bethanien




그리고 도착한 Kunstraum Kreuzberg/Bethanien.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에 위치한 현대미술 전시 공간이다. 원래는 병원으로 지어진 건물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라고 한다. 다양한 주제의 전시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 듯했다. 조금 늦게 도착한 탓에 마감 시간까지 서둘러 전시를 둘러보고 나왔다.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싸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 날은 새벽 일찍 일어나 베를린 중앙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장거리 이동이라 좌석은 미리 예약해두었다. 베를린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약 4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공항으로 바로 가기에는 시간이 조금 남아 프랑크푸르트를 한 시간 정도 더 둘러보았다. 마지막으로 주어진 짧은 자유시간을 알뜰하게 보내고 싶어 이것저것 쇼핑을 하며 시간을 채웠다.
독일 여행 기록을 마치며.
정말 내가 가고 싶었던 여행지가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남아 행복하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채워 온 여행이었다.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기록하려 했지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결국 쓰지 못했다. (정말 바쁘긴 했다.) 독일에서 지내는 8일 동안 그날의 감정과 있었던 일을 메모장에 적어보려 했지만, 그것도 작심삼일로 끝났다. 시간이 점점 지나자 사진을 보며 ‘여기가 7개의 도시 중 어디였지?’ 하고 헷갈리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신기하게도 사진을 보며 글을 쓰기 시작하니 그날의 기억이 다시 선명하게 떠오른다. 물론 그때의 감정까지 완전히 담을 수는 없지만.
지금의 나는 굉장히 무기력하고, 나 자신과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하루 일과 중 여행 기록을 쓰는 일만큼은 빼먹지 않고 있다. 기록을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오히려 나를 조금씩 무기력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있다. 여러 이유로 당장은 여행을 떠날 수 없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여행을 다시 다녀오는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실제 여행만큼 비슷한 크기의 행복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힘들어질 때, 혹은 독일이 그리워질 때 조용히 펼쳐볼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sunset > 해외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베트남 나트랑 여행] 무계획 나트랑 여행 1일차 (3) | 2026.03.06 |
|---|---|
| [독일 여행] 박물관 섬을 걷다, 베를린 2일차 (2) | 2026.02.25 |
| [독일 여행] 평화를 꿈꾸자, 베를린 1일차 (0) | 2026.0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