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행] 평화를 꿈꾸자, 베를린 1일차

2026.02.22sunset/해외 여행

독일 여행 5일차. 여섯 개의 도시를 거쳐 마지막 목적지인 베를린으로 가는 길이다. 가장 가고 싶었던 도시를 일정의 끝에 두었다. 위치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행 내내 그날을 기다리며 설렜던 기억이 있다. 여행이 점점 끝나는게 아쉬우면서도 얼른 베를린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 다른 도시들은 하루 혹은 반나절 정도 머물렀지만, 베를린에서는 3박 4일을 보낼 예정이다. 도시의 규모도 크고 가고 싶은 곳도 많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베를린에 쓰기로 했다.

드레스덴 숙소에서 아침 9시에 나와 9시 30분 열차를 탑승했다. 도시 간 이동 시간은 보통 1시간 정도였기 때문에, 열차가 출발하기 전 항상 위치를 미리 파악해두고 플랫폼에서 먹을 것들을 사곤 했다. 주로 빵이나 커피를 사 먹었고, 이동 거리가 길 경우에는 식사 대용으로 먹을 메뉴를 따로 샀다. 여행을 하다 보니 점점 먹방을 찍는 것처럼 다양한 음식들을 먹게 되었다. 안 먹으면 섭섭할 정도로. 그중 가장 맛있었던 것은 드레스덴 역에서 사 먹은 그릴드 모짜렐라 샌드위치였다. 먹기 전에 따뜻하게 데워 먹었는데, 치즈가 적당히 녹아 있어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정말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Berlin 베를린 도착

그렇게 달려 베를린역에 도착했다. 약간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열차에서 내려 역 안을 둘러보니, 베를린은 정말 대도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인파도 인파였지만, 역 안이 워낙 넓어 잠시 길을 잃을 정도였다. 출구도 양쪽으로 나 있어 지도를 봐도 어디로 나가야 할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한쪽으로 나가보았지만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왔다. 여행 내내 비교적 작은 도시들만 다니다가 갑자기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 서 있으니, 그 규모가 더 크게 느껴졌다.

너무 러프한 P의 여행계획

다른 도시들은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었지만, 베를린은 그렇지 않았다. 가고 싶은 곳들을 지도에 미리 저장해두었고, 지리를 잘 몰라서 내 마음대로 도시를 세 구역으로 나누어 계획을 세웠다. 여행은 비교적 러프하게 진행했다.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도 시간이 남으면, 다음 날 가기로 했던 장소 중 근처에 있는 곳을 미리 들르기도 했다. 계획은 세웠지만, 그날의 흐름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이고 싶었다. 오늘은 숙소를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현대미술관들을 둘러볼 예정이다.


Futurium

역 주변을 잠시 둘러본 뒤 숙소로 갈 예정이라, 캐리어는 역 안 보관소에 맡기고 나왔다.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베를린 중앙역 근처에 위치한 Futurium이었다. 베를린의 전시 공간들을 소개하는 인스타그램을 우연히 보고 이곳은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관부터 이름값을 하고 있다. 유리와 금속이 어우러진 건물이 깔끔하면서도 미래적인 분위기를 풍겨낸다. 

조형적으로 완벽한 전시 공간

내부 역시 이름처럼 미래지향적인 전시들로 가득했다. 과학과 기술, 환경과 사회의 변화를 다루는 전시들이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었고,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도 많아 자연스럽게 오래 머물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전시가 무료였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지하 전시 공간으로 내려가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위층과는 다르게 어두운 공간이 펼쳐졌고, 그 안에서 다양한 미디어 전시와 체험형 설치 작품들이 이어졌다. 한국에서는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방식의 인터랙션들이 많아 더 흥미로웠다. 사람들은 단순히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버튼을 누르고 화면을 터치하며 적극적으로 전시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은 내가 미술관에서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다. 작품이 관람객과 함께 완성되는 느낌이 들어서다.

컬러풀한 베를린

2층으로 올라오니 로봇이 있었고, 그 앞 테이블에는 많은 팔찌들이 놓여 있었다. 이 팔찌는 전시를 체험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키 같은 역할을 한다. 관람객이 팔찌를 단말기에 터치하면 전시가 반응하는 방식이다. 어떤 선택을 했는지 기록되기도 하고, 그에 따른 결과가 화면에 나타나기도 한다. 단순히 버튼을 누르는 체험이 아니라, 관람객 개인의 선택과 참여가 데이터처럼 쌓이는 구조다. 이 시스템은 Futurium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였다. 이름처럼, 미래의 기술을 직접 체험하는 느낌이 분명하게 전해졌다.

What kind of future do i want to live in?

많은 생각이 들게 하던 질문

전시 공간은 넓고 체험할 거리도 많았다. 언어의 한계로 모든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직접 참여하는 전시가 많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내 얼굴을 촬영한 뒤, 그 이미지가 어울리는 미래 공간에 합성해주는 체험이었는데 꽤 재미있었다. 혼자였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집중해서 잘 놀다 나온 기분이었다.

전시를 다 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건물 곳곳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과 친환경 설비가 눈에 띄었다. 전시에서 이야기하던 미래가 이 공간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미술관에 오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아트샵이다. 재미있고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는데, 꼭 필요하지는 않지만 괜히 눈길이 가는 것들이었다. 그중에서 나는 50cm쯤 되어 보이는 커다란 지우개와 연필을 하나씩 구매했다. 실용적이라기보다는 여기 미술관에 어울리는 기념품이라 구매했다.

베를린역

Hilton Berlin 힐튼 베를린

제일 좋았던 화장실

역에서 짐을 찾고 Hilton Berlin으로 이동했다. 소도시에서는 호텔보다 에어비엔비에 머물며 그 도시에 사는 사람처럼 지내보고 싶었지만, 베를린은 4일을 머무르는 일정이라 호텔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힐튼 베를린은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이동하기에도 편했고, 무엇보다 전반적인 룸 컨디션이 좋았다. 객실은 깔끔했고 인테리어도 단정해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것은 화장실이었다.(우리 집보다 좋은듯?) 아, 또 체크인 할때 직원이 친절해서 좋았다.


New National Gallery

숙소에 짐을 풀고 또 다른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번에 방문한 곳은 New National Gallery이다. 베를린의 미술관들은 건축물부터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박 4일 일정 중 이틀은 확실히 미술관에 갈 것 같아 이곳에서 뮤지엄패스 3일권을 구매했다. 가격은 32유로였다. 어느 나라를 가든 미술관을 여러 군데 방문할 계획이라면 뮤지엄패스를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방문한 시기에는 YOKO ONO: DREAM TOGETHER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오노 요코의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전시로, 관람자가 단순히 작품을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직접 참여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개인의 작은 행동이 모여 집단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고, 이를 통해 평화와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만드는 전시였다. 전시 주제 또한 마음에든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책상 위에 깨진 도자기 조각들이 놓여 있고, 사람들은 그 앞에 앉아 끈으로 하나씩 이어 붙이고 있다. 완성한 조각은 벽면에 전시할 수 있는데, 이를 ‘지혜와 사랑으로 수선하는 행위’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 앉아 작은 조각들을 천천히 이어 붙였고, 완성한 작품을 벽에 올려두고 왔다.

가장 좋았던 장면

그리고 코너를 돌아 또 다른 장면과 마주했다. Play It By Trust라는 대표 설치 작품으로, 모든 말이 흰색인 체스 게임이다. 기억과 신뢰를 시험하는 작품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누가 어느 말을 두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계속해서 게임을 이어가야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 공간이 특히 좋았다. 조용하지만 묘하게 긴장감이 흐르는 분위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한국어 발견

평화를 꿈꾸자!

한동한 나의 배경화면이 되어준 사진

자연과 어우러진 야외 공간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요. 

네모네모네모네모

내가 미술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이 이곳에는 모두 갖춰져 있었다. 내부 공간도 좋았고, 외부 공간 역시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관객 참여형 전시라는 점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해외에 나오면 확실히 이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방식의 전시를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전체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전시였다.

다음 전시를 준비중인 모습


그리고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베를린 주립미술관으로 향하는 길이다. 방금 본 미술관 주변을 조금 더 둘러보고 가면 좋겠지만, 이곳은 6시에 마감이라 우선 전시를 먼저 보기로 했다. 관람을 마친 뒤 다시 돌아와 천천히 주변을 걸어볼 예정이다.


Berlinische Galerie  베를린 주립미술관

베를린에 있는 미술관들을 찾아보았을 때 가장 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였다. 건물 외관 위가 풍선처럼 부풀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처음에는 건축 요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것 역시 전시의 일부였다. Daniel Hölzl의 작품으로, 이 설치는 단순히 입구를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건축적 특징과 기존 외부 공공미술 작품을 함께 고려해 만들어진 작업이라고 한다.

Mariechen Danz – edge out

그리고 1층으로 들어서서 마주한 공간이다. 큰 공간들이 하나의 작품처럼 이어져 있다. 내가 이 미술관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면이기도 하다. 높은 천장과 탁 트인 구조 덕분에 작품은 벽에 걸려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점유하는 요소처럼 느껴진다.

전시는 작품을 나열하기보다 공간을 유기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관람객의 동선과 시선까지 고려된 배치 덕분에, 내가 움직일 때마다 다른 장면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공간 안을 ‘통과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다른 각도에서 작품을 보기 위해 2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공간은 층을 달리할 때마다 성격을 바꾼다. 같은 작품이지만, 시점이 달라지자 전혀 다른 형태와 밀도를 갖게 된다. 이 미술관이 흥미로운 이유도 바로 이런 지점에 있는 것 같다. 작품은 고정되어 있지만,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계속해서 새롭게 구성된다.

Provenances: Wayfaring Art

그 다음 인상 깊었던 공간은 Provenances: Wayfaring Art 전시였다. 이 전시가 주는 메세지는-
모든 작품은 이동한다. 그리고 그 이동의 역사를 아는 것은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넓힌다.

전시를 보고 숙소 근처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나갈 예정이다.


왕접시

Huong Lua라는 베트남 음식점에 들어왔다. 구글 지도로 평점이 괜찮은 식당을 찾아온 것이다. 쌀국수를 시킬까 하다가 밥이 더 당겨서 내가 좋아하는 그린 커리를 주문했고, 사이드로는 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월남쌈 같은 롤을 하나 시켰다. 독일은 정말 음식 양이 많다. 그래서 그린 커리를 다 먹고 나서는 사이드 메뉴를 포장해달라고 했다. 맛도 좋았고 음식이 신선했다. 저녁 시간을 살짝 비껴가서 웨이팅도 없었기에 더욱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역시 행복에는 작은 불행이 따라오는 법이다. 식당에서 카메라를 떨어뜨린 이후로 상태가 어딘가 이상해졌다. 그 뒤로는 사진을 찍기 전마다 카메라를 한 번씩 두드려야 했다.(ㅠ)


Potsdamer Platz  포츠다머 플라츠

포츠다머 플라츠를 보기 위해 왔다. 단순히 멋진 건축물로 유명한 곳인 줄 알았지만, 이곳은 단순한 광장이 아니라 분단과 공백, 그리고 재건을 거쳐 글로벌 도시로 이어지는 베를린의 역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장소라고 한다.
1920년대에는 유럽에서 가장 번화한 교차로 중 하나였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되었고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면서 한동안 아무도 없는 땅으로 남았다. 이후 독일 통일과 함께 대규모 재개발이 이루어지며 지금의 현대적인 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현재는 고층 빌딩과 쇼핑몰이 모여 있는 베를린의 상징적인 공간이 되었다.

 

귀여운 핫도그집

Denkmal fü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

그리고 걸어서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을 보러 왔다. 처음 멀리서 봤을 때는 분명 이곳이 맞는데, 내가 떠올렸던 높은 콘크리트 기둥이 보이지 않아 잠시 의아했다. 하지만 공간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기둥의 높이는 점점 높아졌고, 어느 순간 나의 시야를 훌쩍 넘어섰다.

이곳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자신의 어두운 역사와 마주하고 기억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면 묵직한 침묵과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그리고 다시 공원 사이를 천천히 걸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향했다.


Brandenburger Tor  브란덴부르크 문

브란덴부르크 문은 베를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이자, 독일 현대사의 굴곡을 모두 겪어낸 역사적 장소다.

이 문은 한때 분단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각종 국가 행사와 축제가 열리는 광장이 되었다고 한다.
저녁 노을이 질 무렵의 모습은 정말 평화로워 보였다.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큰 비누거품을 부는 곳에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나는 혼자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가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루가 잘 마무리되는 기분이었다.


지금은 베를린에 다녀온 지 9개월이 지났다. 사진을 보면 그날의 장면들은 여전히 선명한데, 그때 느꼈던 감정들은 조금씩 흐려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글을 쓰며 다시 자료를 찾아보고,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새롭게 알게 되는 과정은 꽤 흥미롭다.
베를린에서의 미술관들은 여느 다른 도시들과는 달랐다. 더 현대적이고, 더 미래지향적인 공간들이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 하루에 정말 많은 곳을 다녔다는 것도 새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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