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보내다가 문득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 보기만 해도 잠시나마 마음이 힐링된다. 매일 여행하며 살아간다면 어떤 기분일까. 과연 행복할까? 인생도 여행과 같다고 하지만, 지금 내 인생의 여정은 잠시 길을 잃은 듯하다. 언젠가 다시 떠날 날을 기약하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야지.

싱가포르에서의 네 번째 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구름 속에 누워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큰 일정은 없고 도시 외곽에 나가서 여유롭게 자연 속을 거닐다 카페에 가고 쇼핑할 계획이다. 여행자가 아닌, 그냥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준비를 마치고 내려가 간단히 조식을 챙겨 먹었다. 어디를 가든 과일의 맛은 변함없이 신선하고 맛있다.


DEMPSEY HILL
Dempsey Hill은 과거 영국군 군사기지였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프리미엄 외식 및 쇼핑 단지인데, 아침 일찍 커피를 마시기 위해 첫 일정으로 잡았다. 이름만 보고는 약간 공원 같은 곳일 줄 알았지만, 막상 가보니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레스토랑과 카페가 모여 있는 활기찬 거리였다. 차가 있다면 주말에 와서 식사도 하고 여유를 즐기기 딱 좋은 곳 같다.

후기가 많고 괜찮아 보여 PS.Cafe로 가기로 결정했다. 호텔에서 목적지까지 버스로 30분 넘게 걸렸는데, 나는 모르고 한 정거장을 지나쳐 내려서 카페까지 꽤 걸어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호텔 앞 버스정류장에서 함께 탔던 사람을 카페에서 만났다. 그것도 야외 테라스에서.
아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파워 I라 그냥 내적 친목만 쌓고, 나는 메뉴판을 정독하기 시작했다.

날씨는 예상대로 쨍쨍했고, 나름 아침 일찍 준비해서 카페에 왔지만 내부는 이미 만석이었다. 잠깐 기다릴까 했지만, 그냥 테라스 자리에 앉기로 했다. 더운 날씨보다 놀라웠던 건, 우리나라의 비둘기와 달리 싱가포르의 새들은 마치 작은 닭 같았다는 점이었다. 혹시 여기 테라스에만 그런 새들이 있었던 걸까? 무섭긴 했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시드니에 지낼 때는 조류 공포증이 생길 정도로 다양한 새들을 만났지만, 그냥 음식을 탐내는 귀여운 존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위 사진은 아포가토가 아니라 초코 케이크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아메리카노와 함께 찍으려 기다리는 사이 아이스크림이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케이크 맛은 마치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본 듯한 진하고 꾸덕한 초콜릿 맛! 너무 달아서 다 먹지는 못했지만,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으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었다.

이곳은 인위적으로 꾸며진 공간이 아니라 진짜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을 준다. 일러스트의 한 장면처럼 평화로운 풍경 덕분에 여유롭게 책을 읽기에도 참 좋았다. 옆 테이블의 브런치가 맛있어 보여서, 다음엔 꼭 브런치를 먹으러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다.

소품샵이나 편집샵이 많을 줄 알았지만, Dempsey Hill의 90%는 식당과 카페였다. 배가 더부룩해 소화를 시키고 싶던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Market이라는 간판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해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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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각국의 마켓 구경을 좋아하는데, 이곳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깔끔하게 정돈된 식자재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특히 칸에 딱 맞춰 정리된 모습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만난 멋진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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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psey Hill 출입구 쪽에 위치한 Dover Street Market. 지도상에는 ‘Market’으로 표시되어 있어, 나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구경하려 들렀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단순히 소품샵이나 편집샵 정도라고 생각하며, 별다른 기대 없이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스투시 로고와 힙한 직원들이 반겨주었다. 매장을 둘러보니 웬만한 이름 있는 브랜드는 다 갖춰져 있었고, 진열 방식도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약간 꼬르스꼬모 매장을 연상시키는 느낌이었다. 최근에 투 더 월 엔 시티가 자컨에서 도쿄 Dover Street Market을 방문하는 모습을 봤는데, 그때야 이곳이 세계적으로 체인점이 있는 유명 매장임을 알게 되었다. 어쩐지 좋더라.

Dempsey Hill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어떤 건물 안에 있는 이름 모를 가구점을 구경했다. 1층으로 올라가던 중, 사람만 한 도마뱀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혹시 악어였을까? 무서워서 사진도 찍지 못했다. 이렇게 여기저기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싱가포르를 여행하다 보면 날씨가 워낙 더워 자연스럽게 매장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덕분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좋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통유리 너머로 나무와 하늘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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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gapore Botanic Gardens
그래도 자연. 싱가포르의 보타닉 가든은 자세히 알아보진 않았지만, 꼭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호주 멜버른에 있을 때 가장 좋아하고, 가장 의지했던 장소가 Royal Botanic Gardens였기 때문이다.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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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을 거닐다가 풀밭에 잠시 누워보기도 하고, 호수 앞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한참을 머물렀다.
오랫동안 마음에 맺혀 있던 안 좋은 기억들을 흘려보내고, 산뜻한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잔잔한 호수처럼 조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하게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Orchard Road
보타닉 가든에서 그리 멀지 않는 오차드로드에 왔다. 싱가포르에서 쇼핑을 하고 싶다면 Orchard Road에 가면 된다고 추천 할 정도로 정말 많은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들이 줄지어 있다.

Da Shi Jia Big Prawn Mee
쇼핑 전에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오차드 로드 부근의 추천받은 음식점에 들렀다. 메뉴판을 보니 비슷해 보이는 메뉴가 많아 뭘 시켜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직원이 내 폰 화면에 있는 후기 사진을 보고 메뉴명을 친절히 알려주었다. 여기서 먹은 음식은 아마 싱가포르에서 먹은 음식 중 단연 1등일 것이다. 새우 양도 넉넉하고, 소스도 독특하게 맛있어서 양념이 잘 배인 소면과 함께 먹으면 정말 기가 막힌 맛이다. 순식간에 한 그릇을 다 비웠고, 마음 같아서는 한 그릇을 더 먹고 싶었다. 함께 시킨 주스로 마지막 입가심을 깔끔하게 하고 나서야, 이제야 싱가포르 음식을 제대로 맛본 기분이 들었다.

밥을 먹고 나니 다시 움직일 힘이 생겨 여기저기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무언가를 사기 위한 쇼핑보다는, 각 매장의 인테리어를 살펴보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큰 자산으로 남는 것 같다. 오히려 해외에서의 쇼핑이 더 자유롭다는 느낌도 든다. 사람들의 시선을 덜 의식하게 되고, 들어가고 싶은 매장이 있다면 주저 없이 들어갈 수 있으니까.

어쩌면 이날이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부터는 싱가포르에서 배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인도네시아 빈탄섬으로 2박 3일 일정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 날에는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와 비행기를 타야 한다.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내일부터 시작될 새로운 여정에 대한 기대와 약간의 걱정을 안고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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