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여행 2일 차 아침이다. 시차 때문인지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오히려 잘 됐다. 사람이 없는 이른 아침의 쾰른 대성당을 꼭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 여는 시간은 6시. 간단히 준비를 하고 나와 기차 플랫폼에서 독일식 빵 하나를 사 먹으며 여행의 기분을 냈다.
대성당 앞에 도착하니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한적하고 고요한 모습. 차가운 새벽 공기와 이곳은 유난히 잘 어울렸다. 안으로 들어가니 조용히 기도 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무교이지만, 나도 잠시 자리에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말없이 머무는 그 시간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두 번째 여행 도시 프랑크푸르트로 가기 위해 다시 숙소에 들러 짐을 챙긴 뒤 쾰른 역으로 향했다.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 처음 도착했던 도시이기도 한데,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오는 직항이나 경유편도 대부분 프랑크푸르트로 많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여행 전 정보를 찾아보니 의외로 노잼 도시라는 이야기도 많아서 일정에 넣을지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위치상 쾰른 위쪽에서 내려와 남쪽 소도시로 이동하려면 꼭 거쳐야 하는 도시였고, 그냥 지나치기엔 괜히 아쉬울 것 같았다. 그래서 프랑크푸르트를 중심으로 미술관 투어를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시간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프랑크푸르트 도착
프랑크푸르트에서도 하루 머물며 도시를 둘러볼 계획이다. 역 근처에 있는 숙소를 에어비앤비로 예약했다. 아파트였고, 호스트가 함께 지내는 룸 쉐어 숙소였다. 막상 방에 들어가 보니 사진보다 훨씬 넓고 깨끗해서 만족스러웠다. 다만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도어락이 아닌 열쇠를 사용하는 구조였는데, 열쇠가 잘 맞지 않아 문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문을 여는 데에도 은근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점을 제외하면 하루 머무르기에는 충분히 괜찮은 숙소였다. 체크인을 하고 나서 호스트가 추천해준 숙소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독일에 와서 느낀 점 하나는 음식 양이 정말 푸짐하다는 것이다. 나름 많이 먹는 편인데도 매번 조금씩 남기게 된다. 그래도 넉넉하게 나오는 식사는 여행 중 꽤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제 본격적인 미술관 투어를 시작한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미술관 투어를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지도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미술관들이 마인강변을 따라 쭉 이어져 있어 하나를 보고 걸어서 다음 미술관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규모가 큰 미술관과 박물관은 물론, 작지만 개성 있는 공간들도 함께 모여 있다. 미리 찾아보지 않았던 미술관을 우연히 발견해 들어가게 되는 순간들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빼놓지 않는 나에게, 프랑크푸르트는 꽤 잘 맞는 도시였다.

오늘 여러 곳의 미술관을 방문할 계획이라, 입장권을 따로 구매하는 대신 뮤지엄 패스(Museumsufer Card)를 이용하기로 했다. 첫 번째로 들어간 미술관에서 21유로짜리 2일권 패스를 구매했는데, 대부분의 박물관과 미술관을 자유롭게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이었다. 나는 하루만 머물렀지만 여러 곳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충분히 이득이었다.
티켓은 매표소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 처음 방문한 미술관에서는 직원이 패스에 대해 잘 모르는 듯해 구매 과정이 조금 헤맸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처음에는 규모가 큰 미술관에서 패스를 구매하는 것이 더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Museum Giersch 뮤지엄 기어쉬




슈테델 미술관으로 향하던 길, 외관을 보고 “여기도 미술관인가?” 하는 마음에 들어간 곳이 바로 Museum Giersch였다. 뮤지엄 기어쉬는 주로 19세기 이후 라인-마인 지역의 예술과 문화를 중심으로 한 기획 전시를 선보이며, 회화·사진·디자인·건축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룬다. 상설 전시보다는 주제 중심의 특별전이 자주 열리는 편이라 방문할 때마다 다른 전시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이른 아침 첫 방문지라 관람객은 나뿐이었고, 덕분에 아주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들어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공간도 좋았고, 특히 1층에서 전시 자료와 다양한 디자인 서적을 함께 볼 수 있었던 공간이 가장 마음에 남았다.
가끔 이런 공간을 보고 나면, 언젠가 나의 집이나 새로운 공간도 이렇게 감각적으로 가꾸고 싶다는 영감을 받게 된다.
Liebieghaus 리비히 하우스



리비히하우스는 조각 전문 박물관으로, 고대 이집트부터 중세·르네상스·바로크·근현대 작품까지 약 5,000년의 조각사를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건물 자체도 19세기 저택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라 정원과 외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나는 미리 계획하고 온 곳은 아니었지만, 바로 앞 미술관 블록 옆에 자리하고 있어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기게 됐다.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정원이 보이는 테라스 카페와 내부 카페에는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고, 공간 자체가 하나의 전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전시를 보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먼저 하며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카페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고, 나는 안쪽 서재처럼 꾸며진 조용한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본격적으로 미술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작품보다 공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와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더 마음에 들어왔다. 특히 통창을 통해 쏟아지던 빛과 그 너머로 보이던 정원의 풍경은, 나에게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Städel Museum 슈테델 미술관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였지만, 이미 두 곳의 미술관을 둘러본 뒤 세 번째로 도착한 곳이 바로 슈테델 미술관이다. 프랑크푸르트 미술관 투어에서 빠질 수 없는 대표적인 공간이라 그런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규모와 분위기에서 오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지상층을 먼저 둘러본 뒤 내부 동선을 따라 위층으로 이동했다. 전시가 시대 흐름에 맞게 이어져 있어 자연스럽게 미술사의 변화를 따라가게 된다. 1층에서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고전 회화가 중심이었고, 종교화와 초상화의 묵직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2층에서는 인상주의와 근대 회화를 만나며 색감과 표현이 한층 자유로워지는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루프탑. 실내에서 차곡차곡 쌓였던 시선이 바깥으로 한 번에 열리는 순간이었다. 탁 트인 도시 풍경과 강,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의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시를 보고 난 뒤 마지막에 이 공간을 마주하게 되는 구성 자체가 하나의 연출처럼 느껴졌다. 날씨까지 좋아서인지, 이 도시를 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상층에서 전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지하층에는 현대미술과 특별 전시 공간이 이어진다.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위층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고, 마치 시대가 한 번에 전환되는 지점처럼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현대미술을 더 좋아하는 편이라 지하층이 특히 인상 깊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Rineke Dijkstra의 Beach Portraits 특별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꾸밈없는 인물의 모습과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이 공간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며 오래 시선을 붙잡았다. 전시 벽면이 거울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도 단순한 연출이라기보다 하나의 의도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품을 바라보는 동시에 그 안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까지 함께 보게 되면서, 결국 사진 속 인물과 관람객이 서로를 마주보게 되는 구조였다. 그래서 전시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그 장면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 공간에서는 나의 모습도 함께 담아 사진으로 기록해 보았다. 혼자 여행할 때 거울 사진은 놓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한층 더 내려가면 넓게 펼쳐진 전시 공간이 나온다. 대형 현대미술과 설치 작품들이 중심이 되어 공간 자체가 하나의 무대처럼 느껴졌다. 관람 동선이 겹치던 한 할아버지가 작품을 오래 바라보고 계셨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라 몇 장 사진으로 남겨 보았다. 사진 속 완벽한 피사체였다.

다음 미술관으로 향해 천천히 걸어가던 길. 날씨가 너무 좋아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느려졌다. 그러다 또 하나, 외관이 눈에 들어오는 공간을 발견했다. 미리 알아본 곳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이끌리듯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Museum für Kommunikation Frankfurt 프랑크푸르트 통신 박물관




우연히 들어선 이곳은 통신 박물관이었다. 오래된 통신 장비와 체험형 전시가 함께 있어 가볍게 둘러보기 좋았고, 통창과 넓은 구조의 건물 자체도 인상적이라 전시뿐 아니라 공간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아래층에서는 시상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는데, 장소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장면이라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었다.



통신 박물관을 나와 오늘 미술관 투어의 마지막 목적지인 Museum Applied ArT 향했다. 마인강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길이 참 좋았다. 강변에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여유롭게 지나가고 있었고, 나도 이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함께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Museum Applied Art 응용 미술관





오늘의 마지막 미술관인 Museum Applied Art에 도착했다. 전시는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디자인과 공예를 아우르며, 가구·유리·금속·텍스타일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보여준다.
이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장면은 하얀 건물과 통창 너머로 들어오던 자연의 풍경이었다. 유리창을 통해 스며든 빛이 하얀 벽면에 부드럽게 반사되며, 건물과 자연이 하나의 장면처럼 겹쳐 보였다. ㅁ자 형태의 구조 덕분에 중앙에 있는 나무를 층마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사람이 드문 조용한 창가 자리에 앉아 한동안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다섯 개의 미술관을 둘러본 뒤, 뢰머광장으로 향하기 위해 아이젤너 다리를 건넜다. 이제는 프랑크푸르트의 관광지를 둘러볼 계획이다. 주요 거리가 모두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라 더욱 편안했고, 걸어가는 길마다 이어지던 풍경 덕분에 이동하는 시간마저 여행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Römerberg 뢰머광장




다리를 건너 안쪽으로 들어가면 뢰머 광장이 나오는데 이 공간에 들어선 순간, 아 진짜 유럽 여행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도시의 광장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이 쉽게 실감 나지 않았다. 광장 중앙의 분수를 기준으로 비슷한 듯 서로 다른 파사드의 건물들이 빼곡히 둘러서 있었고, 나는 계속해서 그 주위를 돌며 하나하나 눈에 담으려 했다. 골목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들도 따라 들어가 보며 주변을 구경했다. 날씨가 좋아 광장을 둘러싼 테라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그 풍경마저도 이 공간의 일부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Kleinmarkthalle 클라인마크트할레




프랑크푸르트의 로컬 마켓도 빼놓을 수 없다. 마감 시간이 6시라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유독 줄이 길게 늘어선 소시지 가게 앞에 나도 자연스럽게 섰다. 메뉴판은 독일어뿐이라 무엇을 주문해야 할지 망설이며, 앞사람들이 고르는 메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내 앞에 서 있던 분이 본인이 주문한 메뉴를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그대로 같은 메뉴를 주문해, 시장 안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소시지를 한입 베어 물었다. 확실히 다르다. 독일 소시지가 유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클라인마크트할레에는 정말 다양한 독일 로컬 음식들이 가득했고, 2층에는 와인바와 푸드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이곳에서 천천히 앉아 하루를 마무리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뢰머광장으로 돌아가는 길, 거리에는 사람마다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있었다. 나도 그 흐름에 합류하고 싶어 젤라또 가게에 들러 쿠키맛 젤라또를 샀다. 분수대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광장의 건물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소소한 순간이지만 마음이 가득 차오르고 행복했다.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나서도 이곳을 떠나기 아쉬워, 나는 한참 동안 광장을 멍하니 바라봤던 것 같다.
Europäische Zentralbank 유로 타워


앞서 말했듯 5월의 독일은 해가 정말 늦게 진다. 정해진 계획을 다 마쳤지만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기 아쉬워 근처를 둘러보다 유로 타워를 발견했다. 유로 조형물은 사진으로 많이 봤는데, 그곳이 프랑크푸르트였다니! 이 조형물이 유명한 이유는 같이 사진을 찍으면 금전운이 들어 온다고 한다. 혼자 여행 중이던 나는 그림자를 이용해 사진을 남겼다. 부자 되게 해주세요 제발.
프랑크푸르트에서의 하루가 끝났다.
여행을 하면 보통 한 나라의 한 도시 안에서만 머무르지만, 이번 독일 여행은 하루하루 다른 도시를 탐색한다. 매일 새롭고 설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내일이면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래서인지 하루 동안이라도 도시의 매력을 최대한 느끼려 열심히 걸어 다니게 된다. 하루로는 도시의 모든 매력을 담기엔 짧지만, 나는 이미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언젠가 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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